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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동주’ 이어 ‘박열’로 다시 일본을 겨누다
기사입력: 2017/01/04 [14:3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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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저널 서수민 기자] 이준익 감독이 신작 박열의 캐스팅을 완료하고 2017년 영화계를 연다. ‘박열은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동주에 이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의 12번째 연출작이기도 하다.

 

박열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실존 인물이다. 백과 자료에 따르면 경상북도 문경 출신인 박열(1902~1974)은 구제중학교인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현재 경복고등학교) 2학년 때 3·1운동과 관련되어 퇴학당한 후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를 결성하며 조직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흑도회창립 후 1922'전국노동자 제군에 격함'이라는 선언을 발표, '계급투쟁의 직접적 행동기관임을 선언'하면서 국내의 젊은 지식인들과 학생층에 큰 사상적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1923년 일본인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협조를 얻어 천황 암살을 실행하려던 직전에 발각되어 박열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본은 이 사건을 대역사건으로 중대하게 다루었고, ‘흑도회는 이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천황 암살을 위해 해외에서 폭탄을 수입하려 했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면서 그는 1926325일에 가네코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45일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두 사람이 일본검찰의 문초를 받을 때 서로 포옹하는 모습을 일본 판사가 촬영, 사진이 사회에 누출되자, 정부에서 국사범(國事犯)을 우대한다고 야당에서 들고 일어나는 등, 일본 정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복역 중 가네코는 형무소에서 자살하였다.

 

두 사람은 일본의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도움으로 옥중에서 결혼하였다. 박열은 감옥에서 자신의 사상을 함축한 일본의 권력자에게 줌을 비롯해 나의 선언’, ‘음모론등의 글을 썼다. 가네코도 이곳에서 원고지 3000매에 달하는 자서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썼으며, 200여편에 이르는 단가(短歌)를 남기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박열은 222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독립운동가 중 최장기 복역이었다. 출옥한 그는 이후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버리고 재일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등 우익단체들을 흡수·통합하면서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이라는 기구를 만들고 단장이 되었다.

 

그 뒤 민단은 북한 쪽의 '재일조선인총연합'과 대립하면서 이승만 계열의 남한단독정부수립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정치노선을 바꾸었다.

 

박열은 한국전쟁 도중 북한에 납북되어 이후의 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박열은 1974년 평양에서 사망했고, 사망 당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박열의 저서로는 신조선혁명론’(新朝鮮革命論)이 있다. 박열에게는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영화 박열은 그의 삶 중 관동대지진(1923)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과 천황암살 과정을 중심에 둔다. 박열과 가네코의 국경을 초월한 러브스토리도 빠질 수 없는 영화의 핵심 코드가 된다.

 

영화에서 박열은 스크린과 TV드라마를 넘나들며 사랑받는 대세배우 이제훈이 연기한다. 이제훈은 영화 건축학개론’, TV드라마 시그널등을 통해 섬세한 감성적이며 폭발적인 연기로 주목받아왔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사랑한 박열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 역은 신예 최희서가 캐스팅 됐다. 최희서는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에서 윤동주와 그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 후카다 쿠미 역할을 맡아 이준익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영화계에서는 '동주'에 이어 '박열'까지 합류한 최희서를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로 주목하고 있다.

 

박열1월 하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K스타저널 서수민 기자 / 사진=영화 동주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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