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는 어떻게 모녀가 함께 보는 드라마가 됐나

'도깨비' 신드롬으로 읽는 사회

유진모 | 기사입력 2017/01/05 [14:28]

'도깨비'는 어떻게 모녀가 함께 보는 드라마가 됐나

'도깨비' 신드롬으로 읽는 사회

유진모 | 입력 : 2017/01/05 [14:28]
 

 

[K스타저널 유진모 칼럼]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와 그 주인공들이 인기는 가히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승사자(이동욱)의 전생이 김신(공유)을 죽인 왕여임을 밝히는 스틸이 공개되자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왕여가 오르며 화제성을 새삼스레 입증하고 있다. 그 인기의 이유와 그것은 사회적 분위기나 대중의 심리와 어떤 관계일까?

 

고려 장수 김신은 전쟁터에 나가 승승장구하지만 간신의 감언이설에 판단력이 흐려진 어린 왕 왕여는 역모죄를 씌워 그를 죽인다. 그 과정에서 신의 동생이자 왕비인 김선마저도 죽임을 당한다.

 

신은 신()에 의해 가슴에 저주의 장검이 박힌 채 불멸의 존재로 환생해 현대에 이른다. 도깨비 신부를 만나야만 그 검을 뽑음으로써 무()로 돌아가 영생할 수 있는 운명이다.

 

그는 유 씨 가문을 가신으로 삼아 금 나와라 뚝딱하는 재주로 그 집안을 재벌로 성장시키면서 자신도 부를 쌓아왔고 현재의 가신 유신우(김성겸)의 집에서 유덕화(육성재) 저승사자와 함께 산다.

 

여고 3년 지은탁(김고은)19년 전과 9년 전 죽을 뻔했지만 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를 잃고 이모 집에서 온갖 구박과 핍박을 받으며 자라온 그녀는 써니(유인나)가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능시험을 치른다.

 

신과 은탁은 은탁이 도깨비 신부임을 확인한다. 은탁은 신에게 찰싹 달라붙어 경제를 포함한 보호를 받는다. 신은 은탁으로 인해 오랜 저주를 끊을 기회를 잡은 것을 기뻐하지만 이내 사랑에 빠져 발검을 망설인다.

 

저승사자와 써니는 만나자마자 운명적 상대임을 알고 사랑을 느끼는데 써니는 전생에 선이었던 것.

 

성공의 원인으로 네 주인공의 절묘한 캐스팅과 멜로와 코미디를 오가는 관계설정, 그리고 각종 에피소드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전생으로부터 이어지는 사랑과 원한 관계는 판타지 미스터리 등과 버무려져 재미를 극대화한다.

 

또한 네 명이 얽히고설킨 묘한 관계는 때론 닭살이 돋는 듯한 유치함으로 치닫는 면이 없지 않지만 결국 전생과 이생의 연결고리가 멜로와 드라마의 품격을 진지하게 유지해주는 평형추 역할을 해낸다.

 

김은숙 작가의 필력은 소소한 디테일에도 여지없이 작용한다. 덕화와 삼신할매(이엘), 심지어 하찮은 조조연인 줄 알았던 비서(천우진)에게까지 미스터리를 부여하는가 하면 미장센에 불과한 동네 귀신에게마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다. 남은 자식의 생활고를 걱정해 로또번호를 알려달라는 엄마 귀신, 자신의 텅 빈 냉장고를 보고 가슴아파할 어머니에게 미안해 냉장고를 채워달라는 고시원 귀신, 학생 귀신 등을 통해 이 사회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고발한다.

 

 

 

신과 왕의 관계는 신라 김유신과 김춘추의 사돈관계가 연상된다. 정략결혼은 국가유지 혹은 정복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우리 고대국가 형성과정의 신화를 볼라치면 거의 모두가 정략결혼이다. 북부여 출신의 주몽은 졸본부여로 와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왕위를 계승한 뒤 고구려를 건국한다.

 

정재계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사랑보단 정략결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유명 스타가 재벌 혹은 정계 유력 인사와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새 정-, -재계의 결혼이 트렌드가 됐다. 어쩌다 일반인이 재벌가에 입성하더라도 이혼할 확률이 높다는 건 사회적 이슈가 입증한다.

 

은탁은 나이 많은 신이 그동안 숱하게 사랑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오해해 첫사랑은 원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은탁이 첫사랑인 신은 누가 그래, 안 이뤄진다고. 싫은데라고 읊조린다. 그토록 불멸을 끝내고 싶었지만 막상 그 기회를 잡자 첫사랑의 달콤함에 중독돼 망설이는 것이다. 신은 삼신할매로부터 검을 뽑지 않으면 은탁이 죽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인간의 세속적인 이기심이다.

 

신은 939살의 30대 외모고, 은탁은 19살이다. 얼핏 보면 재벌과 미성년자의 원조교제일 수도, 불쌍한 고아의 의탁일 수도 있다. 여기엔 교묘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숨어있다.

 

은탁은 신을 만나자마자 그의 엄청난 재산규모에 반해 난 도깨비 신부. 사랑해요라고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말을 쉽게 내뱉는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신의 집에 의탁한다. 드라마의 성격상 매우 건전하게 그려지지만 과연 현실도 그럴까? 만약 공유가 일반인이고, 가난하다면 현실의 여고 3년생이 그에게 그렇게 쉽게 사랑을 볼모로 내세울 수 있을까?

 

은탁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이모와 사촌들의 압박 속에서 자라서 어리지만 영악하다. 첫사랑인 대학 야구선수보다 잘생기고 부유한 아저씨 신을 선택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유머는 부족하고 나이는 많지만 매우 순수하고 착하며 정의감에 넘친다. 사랑에 숙맥이다. 신을 바라보는 여자 시청자의 시선이다.

 

남자는 롤리타신드롬이다. 가식 없고 할 말 다 하는 은탁은 귀엽기 그지없다. 도발적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수시로 내뱉고 과감하게 먼저 입을 맞춘다. 천박한 자본주의적 애정관이다.

 

인간은 산모의 자궁 안에서 여성으로 잉태된 후 일정기간이 지나야 성별이 가려진다. 그래서 동성애자가 존재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잘생긴 공유, 그보다 더 잘생긴 걸로 설정된 이동욱이 티격태격하며 브로맨스를 펼치는 것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각종 이 설쳐대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의 흥행법이 차용됐다. 공간이동을 하고, 투명인간이 되며, 단칼에 자동차를 이등분하는 초능력은 항상 나약한 인간의 욕망에 불을 지피기 마련이다.

 

도깨비나 저승사자는 빌려온 설정일 따름이다. 우리 민속설화 속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 된 귀신과 달리 자연의 사물 혹은 인간의 손때가 묻은 유품 등이 변한 초월적 존재다. 저승사자는 그야말로 사람이 죽어야만 나타나는 사후세계의 안내인이다.

 

둘은 공존할 수 없다. 도깨비는 다소 어리바리하면서도 심술궂고 장난기가 넘치지만 정의감이 앞서고 인간에게 무해한 경우가 더 많으면서 아무 인간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설정돼있다.

 

이렇게 슈퍼맨이나 좀비가 아닌, 우리에게 친근한 설화 속 주인공에서 차용한 슈퍼히어로에게 멋진 수트를 입혀 등장시키니 남자들은 환상에 빠지고 여자들은 환장하는 것이다.

 

어쩌면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착한 조폭일 수도 있다. “? 다들 아는 도깨비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라는 대사다. 하도 생계형 조폭이 많다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의 친분리스트엔 그리 악질적이지 않은 깡패 친구 하나쯤은 있을 수 있다. 때론 그 깡패는 선의의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오히려 일부 공무원이나 권력자가 더 조폭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게 이번 최순실게이트다.

 

저승사자는 공포의 존재가 아니라 망자의 저승행을 친절하게 돕는 마음씨 착한 가이드다. 망각의 차를 대접해 이승에서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잊게 만듦으로써 저승에서의 안식을 제공한다.

 

도깨비는 설화를 넘어서 권선징악의 히어로다. 도깨비는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미남 지성인이다. 저승사자는 그보다 더 잘생겼다. 엄마와 딸이 동시에 드라마에 몰두할 수 있는 판타지의 향연이다.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의 체계를 해부하면서도 결국 그 당위성을 역설하는 산업과 이념의 프로파간다의 복합체로 비친다. 무시로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건강 음료, 카페, 설렁탕, 수건, 치킨, 인스턴트커피, 화장품, 가구부터 사자가 그토록 집착하는 가구회사의 명함까지 한도초과의 PPL이 방점을 찍는다.

 

사회의 치부를 까발리면서도 교묘하게 자본주의의 돈이면 최고라는 천박한 논리에 충실한 드라마다. 그래서 드라마는 욕하면서 본다고 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평민'에게 연예인의 실제 삶과 또 그들이 꾸민 환상의 세계는 동경할 수밖에 없는 디즈니랜드 그 이상이니까. 기업이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로 큰돈을 벌고, 노동자가 그 돈으로 기업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재벌의 배를 더욱 불려주는 구조와 이 드라마의 인기는 왠지 닮은 듯하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도깨비, 왕여, 이동욱, 공유, 김고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