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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 가이 포크스 가면과 광화문의 촛불
슈퍼히어로물로 위장한 시민혁명의 레퀴엠
기사입력: 2017/01/06 [13:1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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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타저널 유진모 칼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어김없이 토요일 오후면 서울 광화문광장에 수많은 국민들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를 연다. 마치 이를 예견하기라도 했듯 유사한 상황에서 출발한 매우 심오한 프로테스탄트(항거)와 모크샤(해방)를 주제로 한 영화가 10년 전에 있었다. 바로 브이 포 벤데타’(제임스 맥티크 감독).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의 2040. 이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은 붕괴됐고, 새 헤게모니를 쥔 영국은 서틀러(존 허트, 히틀러가 연상된다)가 국회의장에 앉아 독재정부를 꾸렸다. 파시즘에 대한 혁명이란 주제가 시작부터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지배세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물론 심지어 동성애자까지 정신집중 캠프로 끌려간 후 사라지고 온 나라 구석구석엔 감시장치가 설치돼 있으며 철저한 언론조작으로 통제된다. 한 종교 외의 모든 종교를 금지하고, 통금시간을 정해 국민의 행동을 규제해왔다. 바이러스를 퍼뜨려 수십만 명을 학살한 뒤 자연재앙이라고 왜곡하는 가운데 국영 제약회사를 통해 치료제를 판매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이게 잘못됐다고 의심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이 조작된 세상에 1605115일 영국 의사당을 폭파하려다 잡혀 사형당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브이(V, 휴고 위빙)라는 정체불명의 히어로가 나타나 정권에 맞선다.

 

유일한 방송국 BTN 작가 이비(나탈리 포트먼)는 늦은 밤 담당 PD의 집에 가다 통금시간에 걸려 서틀러의 비밀요원 핑거맨에게 잡힌 뒤 강간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브이에게 구출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비는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계엄군에 잡혀가 삭발당한 뒤 투옥돼 갖은 고문을 당하며 브이에 대한 정보를 내놓을 것을 강요당하지만 꿋꿋하게 버틴다. 그렇게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고문자는 브이에 대해 정보를 내놓든지, 사형당하든지 결정하라고 주문하고 이비는 거침없이 죽겠다고 답한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고문자는 이제 자유라고 그녀를 풀어준다. 창살 밖으로 나온 이비는 그곳이 브이의 집의 한 구석에 마련된 모형감옥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비는 브이에게 거칠게 원망을 퍼부으며 넌 괴물이라고 외친다. 브이는 자신이 괴물임을 인정하면서도 이 조작으로 인해 나약했던 이비가 이제 신념과 용기를 갖추게 됐음을 강조한다. 기존의 풍성했던 머리의 삭발은 정부가 통제라는 채찍의 선물로 던진 당근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비로소 자아를 찾는다는 의미다.

 

이비는 빗속에서 그 까까머리를 한 채 오랜 지병인 천식을 이겨내고 해탈의 경지에 올랐음을 깨닫는다.

 

그동안의 조작된 세월이 억울하지만 브이에 의해 자신이 비로소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국민이 됐음을 깨달은 이비는 짐을 챙겨 떠난다. 그러자 브이는 “115일을 기억하라고 그녀를 기꺼이 떠나보낸 뒤 그녀가 나가자 가면을 벗어던지며 고통과 번뇌를 비로소 드러낸다.

 

브이는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서틀러 일당이 정권을 잡은 수단인 폭력을 휘두르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다. 그는 압제에 항거하지 않고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 국민을 바꾸지 않는 한 폭력에 의한 쿠데타는 결국 또 다른 독재정권을 생산할 것이란 것을 알기에 국민의 의식을 바꾸고자 하고 그 첫 단계로 이비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이비는 채찍에 훈련되고 당근에 마취된 전 국민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년을 준비한 이 혁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뜻하지 않게 이비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가 떠나가자 평생 벗지 않았던 가면을 딱 한 번 벗어던진 게 그래서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옆방의 레즈비언 여배우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똑같은 방법으로 이비의 수감조작 때 전달한 바 있다. 편지 끝엔 비록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당신을 만난 적도, 함께 웃은 적도, 운 적도, 입 맞춘 적도 없다 해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썼다. 바로 브이가 이비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비와 브이의 대화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인생은 짧고 사랑은 달콤하니 어서 사랑을 하라는 내용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각성이란 칸타타와 혁명이란 소나타의 대서사시를 웅변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영화가 주요 비주얼로 사용한 화법은 빛의 콘트라스트, 장미, 빨강 등이다.

 

교묘한 빛의 흑백의 콘트라스트는 억압과 자유, 조작과 자각 등으로 대비되는 파시즘과 국민혁명의 은유다. 브이는 독재자 서틀러에게 마지막 선물로 장미 한 송이를, 이비는 브이에게 마지막 선물로 장미 다발을 각각 바친다. 빨간 장미는 사랑, 흰색은 순결, 노란색은 우정을 각각 의미한다.

 

영국은 15세기 중후반 장미전쟁이란 왕권을 다투는 내전을 겪었다. 빨간 장미와 흰 장미를 각각 문장으로 삼는 랭커스터가와 요크가와의 전쟁이었다. 그 결과 랭커스터 가문 계열의 튜더가가 최종적으로 승리를 쟁취해 새로운 튜더 왕조를 열었다.

 

서틀러과 브이 모두 빨간 장미와 함께 이승을 떠난다. 의사당을 폭파하기 직전 자신과 함께 멀리 떠나자는 이비에게 브이는 내가 속해있는 이 세상은 오늘 밤 종말을 맞는다. 내일은 다른 사람이 다른 세상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미전쟁의 결과다.

 

거사가 시작되자 브이는 검정과 빨강 도미노로 빨강 V 자의 위의 두 뿔과 밑의 한 각이 거대한 검정 원을 뚫고 나온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두 뿔과 각은 악마의 형상이다. 원은 기존 체제다. 빨간색은 공산주의의 혁명을 의미한다.

 

공산주의는 실패했고, 그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개성을 존중하지 않은 획일성이기 때문이었다고 해석된다. 도미노 장면에서 폭력시위가 교차편집된 이유는 바로 비폭력 저항, 즉 자기애의 실현과 자아성찰을 말하는 것이다. 그건 브이가 이비에게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그리고 세상에는 우연이 없고 과거와 현재는 연결돼있기 마련이라는 철학을 설파한 데서 이어진다.

 

115일 거사 중 전 국민이 브이의 복장을 하고 획일된 모습으로 계엄군에 맞서는 것은 공산주의고, 의사당이 폭발되고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자 모두 가면을 벗어던진 채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개성과 자아의 각성이란 자유민주주의다.

 

이비는 비의 안에(혹은 빗속에) 신이 있다고 했다. 비는 성장이자 생산, 그리고 변화와 발전 즉 진보를 의미한다. , 과해 홍수가 날 경우 세상은 뒤집어진다. 브이가 비폭력 혁명을 주창하면서도 자신은 폭력으로 독재자를 처단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브이는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지만 정치가는 진실을 덮기 위해 거짓을 사용한다고 웅변한다. 작품은 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담아 널 쓰러뜨린 건 내 칼이 아닌 네 과거다라는 에드몬드 단테스의 페르난도 몬데고를 향한 대사를 등장시킨다. 혁명(내 칼)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과거(독재) 탓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란 의미다.

 

그래서 의사당 폭파를 만류하는 핀치에게 이비는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건물(권위와 권력)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브이는 방송을 통해 누가 죄인인지 알고 싶으면 거울을 보라고 국민의 자각을 고취한다. 뒤늦게 대오각성한 경찰수장 핀치가 죽은 브이를 안타까워하며 정체를 묻자 이비는 내 부모였고, 오빠였고, 친구였고, 당신이기도 했고, 나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브이는 영웅이나 특정 인물이 아닌, 전 국민의 각성, 진정한 자유를 향한 열망과 이의 적극적인 행동이란 의미다.

 

포크스는 사람이 아닌 신념을 기억하라. 신념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뒤 죽었다. 자신을 거짓 감옥에 가두고 고문한 사람이 브이란 사실을 안 이비는 브이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브이 역시 자신의 창조주즉 셔틀러에 대한 그 저주와 분노가 자신에게 용기를 심어줬다고 웅변한다. 고통과 신념을 통한 자각이다.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브이에게 서틀러의 충복 크리비가 왜 안 죽냐고 묻자 브이는 가면 뒤엔 살덩이만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신념이 있다, 총알에도 죽지 않는 신념이라고 답한다.

 

셔틀러가 내세운 국가의 문양은 십자가에 가로줄이 하나 더 있고, 국가 캐치프레이즈는 일치를 통한 용기와 힘, 역경을 이기는 힘을 통한 통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있다.

 

브이는 난 요행을 싫어하고 우연을 안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원인과 결과의 필연, 즉 인과의 법칙이다. 핀치가 갑자기 미래를 보는 것도, 브이가 거사 직전 대규모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것도 모두 인과의 법칙이다.

 

브이의 탄생에 독재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그 독재를 깨뜨리는 게 그의 필연이자 결과다. 그래서 그는 이비의 다 그만두고 나랑 떠나자는 제안을 거부한 채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피의 연쇄(Vendetta)작용을 자신에게서 끝냄으로써 이비, 즉 새 세대에겐 온전한 세상을 물려주려는 것이다. 인과의 법칙이다.

 

영화 말미에 수많은 군중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 군대가 포진된 국회 의사당을 향해 묵언과 비폭력으로 행진한다. 군인들은 국민들을 저지하는 게 아니라 길을 터준다. 트라팔가는 광화문, 가면은 촛불이 아닐까?

 

이런 영화를 자본주의의 리더 미국과 히틀러를 배출한 독일이 합작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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