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6’, 원점으로 돌아간 여전사 액션의 바이블

유진모 | 기사입력 2017/01/20 [11:22]

‘레지던트 이블 6’, 원점으로 돌아간 여전사 액션의 바이블

유진모 | 입력 : 2017/01/20 [11:22]
▲     © 스타저널 편집국
 

 

 

[K스타저널 유진모 칼럼] 좀비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많다. 그만큼 영화적 언어 구사의 선택권이 넓고, 상업적 매력이 높다는 의미다. 컴퓨터게임 바이오 하자드를 원작으로 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역시 좀비의 역할이 작거나 적지 않지만 사실 주제와 중심은 아니다. 전체의 흐름을 보완하는 곁가지일 뿐이다.

 

그런 만만치 않은 메시지로 시작된 시리즈의 마지막 편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은 애초에 이 시리즈가 흥행과 철학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했던 설계도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처럼 시리즈 전체가 동시에 제작된 영화 외에 흥행 뒤 새롭게 시리즈가 이어지는 연작치고 후속작품이 탄탄하기는 쉽지 않다. ‘레지던트 이블시리즈 역시 그래서 1편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1편을 훌륭한 SF스릴러 액션으로 완성한 뒤 2~3편에서 손을 뗐다 4편부터 복귀한 폴 앤더슨 감독은 누가 봐도 1편의 진지한 작가정신으로 돌아갔다는 인상을 준다. 당시로선 충격적인 아이디어였던 레이저 룸’-사람 몸을 자르는-에서의 액션부터 오로지 밀라 요보비치의 아날로그적 액션에 집중한 게 그렇다.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고 만드는 대기업 엄브렐라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드는 T바이러스를 만연시킴으로써 사실상 지구를 초토화시킨 뒤 아예 점령한 미래. 지구는 엄브렐라가 지배하는 안락한 지하세계 하이브와 좀비가 된 언데드들이 우글거리는 피폐한 지상세계로 나뉜다. 엄브렐라와 언데드를 피해 간신히 살아남은 인류는 고작 4000여 명.

 

엄브렐라의 음모는 구인류 말살과 신인류 탄생으로 인한 종의 재편이었다. 공해 식량부족 등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삶이 퍽퍽해지자 열성의 기존 인류를 말살시킨 뒤 그들이 우성의 신인류를 만들어 신세계를 꾸미자는 계획. 그래서 4000여 명의 잔여인류를 해칠 마지막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전편에서 홀로 살아남은 앨리스(밀라 요보비치)에게 하이브의 슈퍼컴퓨터 레드 퀸이 호의적으로 접근한다. 엄브렐라에 복종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레드 퀸은 그러나 엄브렐라를 배신하고 앨리스의 편에 서 그녀에게 48시간 내에 T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백신을 탈취해 인류를 구할 가이드를 해준다.

 

그 뒤 펼쳐질 스토리는 사실 별로 새로울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앨리스가 엄브렐라의 최고 경영자인 닥터 아이삭스와 싸우고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악전고투한다는 내용. 여기에 엄브렐라의 전투사령관으로 10분 정도 등장하는 이준기의 태권도를 기반으로 한 액션이 국내 팬들에게 보너스이고 액션의 스케일이 훨씬 크고 분위기가 더 암울해졌다는 게 특별할 따름이다.

 

 

 

이런 뻔한 구도지만 지난 2~5편과는 다른 게 마지막 편답게 앨리스의 과거 등 시리즈 내내 뭔가 허전함을 남겼던 모든 의문점들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시나리오가 꽤 탄탄하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번 촬영 중 이미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앤더슨 감독과 요보비치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지나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요보비치가 온몸을 던져가며 아크로바틱을 연상케 하는 힘든 액션장면을 소화해냄으로써 관객의 눈을 호강시켜준다.

 

이전까지 앨리스는 언데드에 물려도 좀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서 비현실적인 전투능력을 뽐냈다. 그러나 이번엔 비교적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인다. 특히 그녀가 왜 그동안의 시리즈 동안 클론과 과거의 문제로 정신적인 괴로움을 겪었는지 한꺼번에 정리되는 게 시리즈 마니아들의 15년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내려줄 것으로 보인다.

 

전술했다시피 단순히 좀비영화로 치부하기엔 꽤 복잡하다. B급 호러의 냄새가 강렬하게 풍기면서 다양한 스릴러와 서스펜스의 장치를 빌려왔다. 하이브를 헤맬 땐 쏘우큐브가 연상되고, 세기말적인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드 맥스. 언데드들은 매드 맥스의 독재자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광기에 휩싸인 추종자들을 연상시킨다.

 

언제나 그렇듯 내 이름은 앨리스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내레이션 역시 의미심장하다.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철학적 동화 속 주인공이다. 앨리스의 스페인어인 알리시아는 로마제국시대 순교한 기독교도 성 알리시아고, 그리스어 알레떼이아는 진실이다.

 

아이삭스는 앨리스에게 내가 너를 창조했잖아라고 기선을 제압한다. 그는 언데드들의 창조자이기도 하다. 그가 앨리스를 처단하는 도구로 삼는 검엔 주의 말씀이 원수는 내가 갚으리니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또한 항상 십자가를 가까이하고 산다.

 

그가 인류를 재편하려는 이유는 불치병, 핵무기, 이념논쟁 등을 비롯해 지구 온난화와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고갈 등이 야기한 세기말적 현상 때문인데 과연 그게 누구 탓일까? 세계경제를 독점하는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킴으로써 환경과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동시에 가져온 실질적인 세계지배기구인 엄브렐라, 즉 재벌이 아닌가?

 

그들이 인류재편을 합리화하는 수단은 노아의 방주다그들의 본거지 이름이 벌집 혹은 그처럼 북새통인 장소를 뜻하는 하이브인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철학은 한쪽의 멸망이 다른 한쪽의 구원을 가져온다는 아이러니, 인간과 클론 중에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가에 대한 정체성의 혼돈, 기억이 인간의 정체성에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거룩한 희생정신의 웅변에 기준점을 둔다. 오는 25일 개봉. 106. 18세 이상 관람 가.

 

유진모 ybacchus@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영화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