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쇼퍼’, 자아와 욕망 Vs 낭만과 추상 사이

유진모 | 기사입력 2017/01/29 [13:13]

‘퍼스널 쇼퍼’, 자아와 욕망 Vs 낭만과 추상 사이

유진모 | 입력 : 2017/01/29 [13:13]
이하 아이엠 제공.

  

[K스타저널 유진모 칼럼]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청춘물 트와일라잇시리즈로 국내에 꽤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퍼스널 쇼퍼’(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포스터에 그녀가 선정적으로 등장하는 데 현혹돼 선택한다면 당혹스러울 것이다.

 

105분의 러닝타임을 거의 그녀 혼자서 책임지는 이 영화는 칸이 연출력에 손을 들어줬듯 암전과 자연조명 그리고 소음과 클래식 등의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적당하게 섞어 인간의 욕망과 자아의 추구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묻는다.

 

미국인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3달 전 쌍둥이 오빠 루이스를 심장마비로 잃은 뒤 자신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를 운명을 산다. 그녀는 먼저 죽은 사람이 저 세상에서 신호를 보내자는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직업은 톱스타 키라(노라 본 발드스타텐)의 퍼스널 쇼퍼 겸 영매다. 오빠의 메시지만 받으면 남자친구가 있는 중동의 오만으로 가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녀는 외딴집에 입주하려는 사람의 부탁으로 그곳에 어떤 영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하루 묵으면서 해괴한 일을 겪는다. 분명히 귀신이 있긴 한데 루이스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

 

갑자기 모린의 휴대전화로 의문의 문자메시지가 오기 시작한다. 상대방은 마치 그녀가 가는 곳곳에 CCTV를 설치한 듯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다. 모린은 그와의 문자대화를 통해 용기를 얻어 그토록 걸치고 싶었던 키라의 의상과 신발과 액세서리 등을 차려입고 흥분해 그녀의 침대 위에서 자위행위를 한 뒤 깜짝 잠이 든다.

 

값비싼 카르티에 액세서리를 구매한 뒤 키라의 집을 방문한 그녀는 키라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현장을 목격하곤 잠시 패닉상태에 빠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그녀를 용의자로 의심한다. 결정적으로 모린은 자신의 집에서 카르티에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영화는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를 넘나드는 듯하지만 사실은 인간 내면의 욕망과 자아에 대한 질문에 중점을 둔 심리극이다. 누가 봐도 노라보단 크리스틴이 매력적이고 사실 스타다. 이렇게 다소 납득이 쉽지 않은 설정을 택한 이유는 현실이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공()은 결코 능력 순서대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모린에게서 결코 그런 표현은 없지만 그녀가 키라의 하이힐과 메탈장식의 드레스에 대해 잠재된 욕망을 결국 드러내고 마는 근원은 내가 키라보다 뭐가 못나서?’일 것이다.

 


그녀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자신이 영혼인지, 루이스가 사람인지, 혹은 괴문자의 주인공이 실체인지, 자신이 환상인지, 혼동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의뢰인의 물건에 절대 욕심을 내선 안 되는 금지된 욕망, 즉 신성불가침의 규칙을 깨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금기에 대한 욕망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고 스스로의 고용인이 되고 싶다고 뇌까린다. 사회 곳곳엔 많은 욕망이 통제되고 있다. 체면 염치 도덕 신용 이미지 등은 물론 각종 얽히고설킨 관계망 속에서 사소하거나 이기적이거나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욕망은 억눌려지지만 그럴수록 개개인의 자존감이나 개성 역시 묵살되곤 한다는 걸 웅변하고 싶은 듯하다. 그건 모린이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장소를 선뜻 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과 연결된다.

 

파리에 살면서 런던으로 자주 출장을 다니는 미국인이 결국 최종 목적지로 선택하는 게 이슬람의 땅 중동이란 게 아이러니다. 이 먼지 풀풀 나는 오만의 허름한 호텔은 의외로 포근하며 사뭇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네가 거기 있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거야?”라는 질문은 장자내편제물론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호접몽과 연결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빅토르 위고와 힐마 아프 클린트는 매우 중요하다.

 

초반에 클린트 북을 보며 그녀가 추상회화의 선구자안 바실리 칸딘스키보다 앞섰다는 평가를 재확인한다거나 위고의 영매 다큐멘터리 시퀀스를 극중의 극으로 삽입한 것은 전파가 발견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휩쓴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의 예술 문화적 사조와 연결된다.

 

위고는 17세기에 완성된 고전주의를 깨뜨린 18세기의 낭만주의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전통적 도덕과 인습에 집착한 조화 균정(고르고 가지런함) 명석의 삼위일체인 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는 자아를 확인하고 그 안에 침잠됨으로써 개인과 창조의 가능성에 가치관을 부여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산 스웨덴의 여류화가 클린트는 초자연적 신비주의에 빠진 대표적인 추상회화의 선구자다. 이렇게 두 사람은 심령세계에서 예술적 문학적 영감을 찾았기에 이 영화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도록 설정돼 있다.

 


모린은 샤넬 카르티에 프라다 등 대표적인 명품숍을 자유롭게 오가며 마음껏 쇼핑을 하지만 사실 그 비용은 자신의 지갑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명품은 자신이 걸칠 것도 아니다. 즉 그녀는 모린으로서 사는 게 아니라 키라의 껍데기 혹은 환영으로서 사는 것이다.

 

그건 죽은 쌍둥이 오빠를 기다리는 것과 연결된다. 루이스가 어떤 메시지를 줄지, 그 메시지가 자신의 삶에 어떤 도움을 줄지, 아니면 그녀에게 열려있는 돌연사의 가능성을 없앨 비결이 메시지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기다릴 따름이다.

 

따라서 모린과 루이스 사이에서 먼저 죽은 것과 아직 살아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실 모린이 루이스인지, 루이스가 모린인지, 누가 살고 죽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중인격인지조차 오리무중으로 숨고 마는 것이다.

 

영화는 사람들이 가진 신념과 행복과 이상에 대해 얼마나 확실한 믿음을 갖고 사는지 묻는다. 더 나아가 자신이 거울로 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자아라는 실체에 대해 얼마나 큰 확신이 있는지 또 묻는다. 그리곤 네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은 실체인가, 허상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으로 이어진다.

 

왕당파였던 위고가 구상이라면 클린트는 추상이다. 내면이 추상이라면 외면은 구상이다. 하지만 껍데기가 진짜인지, 영혼이 진짜인지는 사람마다 매기는 가치관이 다르다. 모린은 그 중간에서 혼란을 겪는다. 키라와의 약속, 아니 피고용인으로서의 노동에 대한 굴종을 지키기 위해 욕망을 억누르지만 결국 자기 것도 아닌 명품을 걸침으로써 정신적 압박(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루이스와 영혼의 교감을 기다리는 내면이 진짜 모린인지, 아니면 키라의 옷을 입고 황홀경에 빠지는 모린이 실체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 답은 모린이 오만에서 만나는 심령과의 대화에 있다.

 

모린의 감정의 출렁임 뒤엔 그녀의 스쿠터 질주가 이어진다. 날것 그대로 살린 스쿠터의 엔진의 굉음과 오버랩되는 갈등구조의 현악연주 및 낡은 문의 치찰음과 수돗물의 낙수 소리 등 자연음이 내는 음향효과도 훌륭하다.

 

스튜어트의 연기력은 영화 한 편을 혼자 이끌고 갈 수 있을 만큼 믿음직하다. 작품은 칸에서 감독상을 수여한 근거도 확실해 보인다. 감독의 바람처럼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으로 딱히 구분할 만큼 명확한 프레임에 짜맞추는 것은 실례다. 다만 김기덕 영화보단 편하다. 15살 이상 관람 가. 29일 개봉.

 

유진모 /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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