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월’, ‘단순 간단 명료’한 전투액션의 향연

유진모 | 기사입력 2017/02/11 [14:42]

‘그레이트 월’, ‘단순 간단 명료’한 전투액션의 향연

유진모 | 입력 : 2017/02/11 [14:42]

 

 

 

[K스타저널 유진모 칼럼] 오로지 재미를 추구하는 킬링 타임이 목적이라면 영화 그레이트 월’(장이머우-장예모-감독, UPI코리아 배급)은 후회가 없을 것이다. , 장이머우라는 이름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국적불명의 윌리엄(맷 데이먼)은 어릴 때 군에 포로로 잡힌 후 유럽 전역의 전쟁터를 떠돌며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살아남은 도둑이자 사기꾼이자 킬러인 신궁이다. 그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검은 가루를 얻고자 동료 페로(페드로 파스칼)와 함께 중국 북부까지 왔다.

 

산적에 쫓겨 궁지에 몰린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만리장성. 그곳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무명수비대라는 특수군대가 60년 만에 나타날 정체불명의 괴물 타오티에와의 결사항전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을 지키는 핵심인물은 여장군 린(징티안-경첨)과 책사 왕(류더화-유덕화). 두 사람은 20년 전 윌리엄과 같은 목적으로 잠입했다 눌러앉게 된 발라드(윌렘 대포)로부터 영어를 배운 덕에 윌리엄과의 대화가 순조로웠다. 윌리엄과 페로는 타오티에와의 전쟁에서 맹활약을 펼쳐 신임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은 마음이 변한다. 이기적이고 오로지 탐욕에 눈이 멀었던 윌리엄은 린과 병사 등 무명수비대의 신뢰로 똘똘 뭉친 희생정신과 동료애에 감동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타오티에와 싸워 목적대로 한 마리를 생포한 끝에 그들이 자석에 약하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수비대에 알려준다.

 

하지만 페로와 발라드는 생각이 달랐다. 두 사람은 검은 가루를 훔쳐서 지긋지긋한 타국에서의 고생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주지육림에 파묻히고 싶었던 것. 그런 그들의 배은망덕한 배신을 막으려던 윌리엄은 역공에 쓰러지고 린은 그를 오해해 감옥에 가둔 뒤 페로를 잡기 위해 추격대를 보낸다.

 


그러나 이들이 내부갈등을 겪는 사이 의외로 영악한 30만 마리의 타오티에는 땅굴을 통해 만리장성을 통과해 황제가 사는 도성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이제 6시간 뒤면 중국 본토가 점령당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인류가 타오티에에게 전멸당할 판이다.

 

20만 개가 넘는 벽돌을 사용해 건축한 성벽 세트와 1만 여벌의 갑옷 세트는 실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엄청난 스케일이다. 이미 붉은 수수밭’ ‘홍등’ ‘연인등에서 얼마나 화려하고 섬세한 색채감각을 지녔는지, 그리고 광활한 중국의 천혜의 자연풍광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충분히 보여준 장 감독의 전매특허는 여전하다.

 

검은색의 보병, 빨간색의 궁사, 파란색의 여군 등으로 각각 색으로 구별한 수비대의 정체성과 난무하는 신비로운 창 칼 톱날 등의 다양한 무기는 고증여부를 떠나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성밖 타오티에의 무리 속으로 날아가 적을 죽이거나 희생되는 여전사들의 활약과 린의 당당함은 명불허전이다. 그동안 궁리(공리)와 장쯔이(장자이)라는 유사한 이미지의 여배우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아온 장 감독의 여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스케일만큼 대규모 전투장면의 몹신이 빈번하다. 눈이 즐겁단 얘기다. 특히 짙은 안개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신은 압권이다.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 사다리를 만들어 동료가 만리장성을 넘게끔 만드는 장면을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면 맞다. 1800억 원의 제작비를 월드 워 Z’ 제작진이 집행했다.

 

일단 재미는 충만하다. IMAX 3D로 즐기는 화면을 통해 쉴 새 없이 객석으로 날아드는 칼 활 괴수 폭발물의 잔해 등은 잠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사운드 역시 훌륭하다. 전쟁의 작전과정을 일일이 알리는 고수들이 울리는 타악기 소리는 심장을 뛰게 만들고, 그 동작 하나하나까지 중국 문화의 위대함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장 감독의 애국심이 돋보인다. 부하를 살리려다 타오티에에게 죽임을 당한 전임 사령관의 장례식이 매우 장대하게 치러지며 뜻하지 않은 엄숙함을 주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애국애족심은 서양인은 이기심 강한 개인주의자고, 중국인은 희생정신이 강한 이타주의자로 노골적으로 그려진 설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윌리엄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위스의 전설이 만든 신궁 윌림엄 텔에서 따왔음을 신기에 가까운 그의 궁술로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난 주제는 신뢰와 희생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다. 외계인도 귀신도 아닌 타오티에란 괴물의 탄생의 배경이 바로 인간의 탐욕이었다고 설정한 게 그렇다. 세계 최강의 무기인 검은 가루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벌고자 자신을 구해준 무명수비대를 배신한 발라드의 폭사도 마찬가지.

 

독재를 싫어하는 장 감독의 신념은 황제를 우스꽝스럽게 설정한 데서 다시 드러난다. 그나마 영웅에선 진시황을 영웅과 독재자, 신념을 가진 지도자와 이기심에 눈먼 허세꾼의 중간지점에서 줄타기를 하도록 만들었다면 이번엔 그냥 타고난 혈통 덕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리에 앉은 철부지일 따름이라며 독재자를 대놓고 비웃는다.

 

하지만 거기까지. ‘붉은 수수밭홍등등에서 중국이 현대화의 과정에서 공산주의 노선을 택함으로써 지나친 전체주의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전면배치했기에 발생한 인권유린과 예술의 억제에 반발했던 장이머우는 찾아볼 수 없다. 대규모 블록버스터로 갈아탄 뒤에도 영웅에서 보여준 대륙의 영화감독다운 정의로운 명분마저도 윤색됐다.

 

게다가 만리장성과 무명수비대가 지구를 구할 마지노선이라니! 소재가 고갈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로선 유럽의 신궁전설과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신비주의와의 결합은 구미가 당기긴 했을 것이다. 다만 이제 철학을 잃어버린 장 감독이 문제였다. 매 작품마다 문제적 주제를 던지거나 선 굵은 연기를 펼쳐온 대포, 영웅본색이 사라진 홍콩영화의 마지막 보루인 류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금물이다.

 

인간의 희생은 신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란 대사는 서양의 정서를 아우르는 그리스-로마신화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긴 하지만 그나마 장 감독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이긴 하다. 물론 트랜스포머보다 몇 배는 재밌다. 103분의 간략한 러닝타임도 적당하다. 21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영화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