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이 미선이 사건, 하필 1주년 되는 날...

신선옥 기자 | 기사입력 2016/12/24 [23:55]

효순이 미선이 사건, 하필 1주년 되는 날...

신선옥 기자 | 입력 : 2016/12/24 [23:55]
▲ 24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언급했다.     © 신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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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저널 신선옥 기자24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효순이 미순이 사건 등 우리가 잊고 있던, 그리고 촛불에 가려져있던 이야기들을 돌아보고 2016년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봤다.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뜨겁던 지난 2002.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의 염원이었던 월드컵 16강 진출을 결정지을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이었던 613일은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열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온 국민의 눈길이 축구를 향해 있었던 그날, 경기도 양주의 어느 시골길에서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친구 생일파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두 여중생이 친구의 집이 아닌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참혹한 상태로 발견된 것. 두 소녀의 이름은 미선이와 효순이. 길을 걷다 뒤에서 오던 미군 장갑차에 의해 무참히 압사를 당했다.

 

“(애들) 옷을 보고 안 거지. 얼굴 형태 봐가지고는 몰라요. 완전히 으스러져 버려서.”

- 심미선 이모부

 

그 이후 훈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미군에 대한 지탄이 쏟아졌지만 그해 1120, 장갑차를 운전했던 운전병과 관제병이 차례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판결의 이유가 운전병은 두 소녀를 보지 못했고, 관제병은 두 소녀가 있으니 피하라고 운전병에게 전달했지만 통신장애가 있어서 전달이 안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거거든요.”

- 당시 여중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사람을 처참하게 죽여 놓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에 분노한 시민들은 미군 2명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고, 그 분노는 온 국민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광장에선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분노가 모여 커다란 촛불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 중에서도 지역의 소규모 시위를 전국적인 촛불집회로 전환시키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한 남성이 어느 날, 철로 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날은 미군 무죄평결 1주년 기념 촛불집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다시 촛불을 키워보자고 하던 시기였죠. 그 친구가 주도했었고요.”

- 당시 여중생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경찰은 그 남성이 철로 위에 누워 있다가 열차에 부딪혀 사망한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미선이,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앞장서서 촛불을 들었다가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난 그의 죽음에 사람들은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꼭 열차 사고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목뼈와 왼쪽 발목, 이 두 개의 뼈가 왜 골절이 됐을까 시신이 누워있는 상태로는 설명이 되지 않아요.”

- 서울대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님

 

이상한 점은 시신의 상태만이 아니었다. 당시 그가 발견된 곳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철로였고, 경찰들도 그가 왜 그곳까지 걸어간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날 촛불시위 때문에 혹시 누군가가 정치적인 테러를 한 게 아닌가

- 당시 여중생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K-스타저널 신선옥 기자> 보도자료 및 취재요청 starjn_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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