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도시’ Vs ‘공조’, 흥행공식과 멀티캐스팅의 명암

유진모 | 기사입력 2017/02/14 [12:37]

‘조작된 도시’ Vs ‘공조’, 흥행공식과 멀티캐스팅의 명암

유진모 | 입력 : 2017/02/14 [12:37]
 


[K스타저널 유진모 칼럼] 영화 조작된 도시’(박광현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가 의외로 선전 중이다. 이 영화는 13일 하루 13492명을 동원, 개봉 후 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203079명을 기록했다. 이는 3주 전 동시에 개봉돼 흥행의 선두다툼을 벌이던 더 킹’(한재림 감독, NEW 배급)공조’(김성훈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의 사이에 끼어들어 첫날부터 1위를 차지하며 이어간 결과라 다소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공조는 같은 날 65400명을 동원해 2위를, ‘더 킹15842명을 동원해 5위를 각각 차지했다.

 

조작된 도시의 흥행세가 이례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캐스팅 때문이다. ‘더 킹은 충무로의 30대와 40대를 대표하는 조각미남조인성과 정우성의 투톱체제에 배성우 김아중 류준열 등이 조연으로 가세한 멀티캐스팅이다. 이보단 좀 덜 화려하지만 현빈과 유해진이라는 버디무비 형태의 공조도 강하기는 마찬가지.

 

조작된 도시의 지창욱 심은경 안재홍이란 캐스팅의 강약을 잴 바로미터는 불분명하지만 누가 봐도 앞선 두 작품에 비교해 월등하다고 인정하기 힘들다. 지창욱은 지금까지 한방이 없었다. 지명도와 필모그래피의 상대비교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세 작품의 감독만 봐도 선전이 맞다. 한재림은 이미 관상으로 10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연출력과 흥행력을 과시한 바 있다. ‘우아한 세계로 남자관객을, ‘연애의 목적연애의 온도로 여자관객을 동시에 사로잡을 줄 아는 감독임을 입증했다.

 

마이 리틀 히어로’(2012)에 이은 두 번째 연출인 김성훈은 살짝 약하긴 하지만 사실상 내세울 만한 필모그래피가 웰컴 투 동막골’(2005)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박광현의 이력서와 공백기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성공요인으로 대본과 연출력 중 어느 것이 먼저냐의 답은 쉽다. 바꿔 말해 아무리 연출력이 뛰어나도 대본이 허접스러우면 시청자가 외면한다는 뜻일 수도, 그런 반전을 일궈낼 훌륭한 연출자가 방송가에 부족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반면에 영화에선 그런 역전이 가능하긴 하지만 금과옥조는 역시 훌륭한 시나리오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의 답은 하등동물에서 진화한 닭이 달걀을 낳았다는 결론이다. 물론 그 진화한 닭이 알에서 탄생한 것도 맞다. 영화가 바로 그렇다.

 

정상급 배우에겐 당연히 시나리오가 쇄도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감독의 이름이다. 두 번째는 배급사다. 그게 안정돼야만 비로소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상대배우가 크게 비호감이 아닐 경우엔 ‘OK 사인을 낸다.

 

만약 앞선 두 조건이 흡족하더라도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절대불가다. 물론 부분적으로 미흡할 경우 일부 시퀀스의 수정을 부탁함으로써 타협점을 찾는 경우는 있다. 이런 걸 잘하는 배우는 성공확률이 높다. 송강호 황정민 등이다.

 

최근 케이블TV 드라마의 신기원을 쓰고, 지상파 드라마를 능가하는 돌풍을 일으킨 도깨비는 연출자를 비롯해 제작진의 노고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 웰메이드 필름이다. 이 정도 연출력과 스태프의 노력과 정성은 웬만한 영화가 무색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 김고은 이동욱 유인나 등에 못지않게 거론되는 이름은 김은숙 작가다. 시나리오(대본)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만약 김은숙의 손끝에서 이런 설정과 대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제작진의 그 정도의 피와 땀을 유발하거나 그랬더라도 빛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나리오 연출 배급 캐스팅 등의 4대 흥행조건이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00명 이상이 달라붙는 영화제작 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운빨변수. 그래서 여기에 쐐기를 박는 게 바로 멀티캐스팅이다.

 

할리우드에서 비교적 지근거리의 멀티캐스팅 블록버스터 사례는 오션스 일레븐일 것이다.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를 남녀주인공으로 내세우고-감히!-맷 데이먼과 브래드 피트를 그 뒤에 세운 뒤 앤디 가르시아를 악의 축으로 설정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아온 작가다.

 

▲     © 스타저널 편집국


후속작 오션스 트웰브에선 이 조합에 뱅상 카젤과 캐서린 제타 존스를 더했고, ‘오션스 13’에선 알 파치노까지 끌어들였다. 이를 가능케 한 배경은 바로 감독의 이름값과 메이저 스튜디오란 투자배급사의 힘이다.

 

예전엔 고작해야 남녀 주인공이나 투톱의 버디무비에 그쳤던 한국영화가 21세기 들어 캐스팅의 한계를 뛰어넘어 할리우드 시스템을 좇을 수 있게 된 큰 이유는 바로 국내 4대 메이저배급사의 시장정착 덕일 것이다.

 

한국 영화계는 19889위험한 정사를 시작으로 외국 메이저 스튜디오의 직접배급이 시작되면서 큰 위기에 봉착한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대기업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거 뛰어들면서 점진적으로 사태가 진전되는 과정을 거치며 오히려 약진하는 계기가 돼 오늘의 4대 배급사 시스템이 자리 잡은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 곡성밀정을 비롯해 속속 한국영화에 돈을 대고 있는 워너브라더스코리아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처럼 할리우드 스튜디오도 이제 한국영화에 뛰어드는 추세다. 이는 국내에 지사를 차린 해외 메이저음반사가 이미 오래전 한국 가요에 투자한 사실에 비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여튼 국내 영화계는 국내외 메이저 스튜디오의 활성화 탓에 독립영화 제작사나 그런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소규모 배급사가 위축되긴 했지만 반대급부로 그 덕에 점점 영화의 몸집을 불릴 수 있게 됐다. 그 선두에 멀티캐스팅 영화가 있음은 당연하다. 최초의 멀티캐스팅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도둑들’(최동훈 감독, 2012)은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주연에 김수현과 런다화(임달화)를 조연으로 기용했다.

 

이후 이정재 황정민 최민식에 박성웅 송지효까지 더한 신세계’(박훈정 감독),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주연에 조진웅 오달수를 더한 암살’(최동훈 감독)까지 이제 멀티캐스팅은 블록버스터의 유니폼 겸 흥행의 보증수표가 됐다.

 

멀티캐스팅의 장점은 일단 관객으로 하여금 외형이 커 보여 재미의 안정성이 보장될 것이란 믿음을 갖게끔 한다는 데 있다. ‘조인성과 정우성에 김아중과 배성우가 나오고 더구나 한재림 감독인데’(‘더 킹’)라는 무한한 신뢰감이다.

 

물론 암살1000만 관객을 가뿐히 넘었지만 더 킹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선 시사하는 바가 여러 가지고 또 크다. 그건 영화인들이 얘기하는 운 칠 기 삼운빨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적 흐름 때문일 수도 있으며 배급 상의 이유일 수도 있다.

 

CJ공조개봉의 3주 뒤에 조작된 도시를 포진했다. 이는 공조가 이토록 크게 흥행에 성공할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거나 조작된 도시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만약 후자라면 그만큼 조작된 도시의 시나리오를 믿었던 것이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결국 영화의 흥행성공의 제1조건은 시나리오다.

 

문제는 관객이 아니라 배우에 있다. 관객은 무한히 노출된 트레일러나 방송, 그리고 입소문을 통해 관람을 선택하면 되고 손해 보더라도 기껏해야 1~2만 원이지만 배우에게 한 번 잘못 선택해 출연한 영화의 후유증은 크고 길다.

 

특히 멀티캐스팅은 흥행이 성공할지라도 톱스타의 경우 거의 본전일 가능성이 높다. ‘도둑들암살로 전지현이 엽기적인 그녀이후 10여 년 만에 비로소 영화의 흥행을 맛본 뒤 제2의 전성기를 열긴 했지만 다른 주연배우들에게 대단한 약진은 없었다.

 

다수의 주연을 앞세운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는 어벤져스일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중 원래부터 슈퍼스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스칼렛 요한슨 정도였다.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와 토르의 크리스 헴스워스는 어벤져스합류 전 각자의 독립된 슈퍼히어로 영화 캐스팅으로 비로소 스타덤에 올랐고, 심지어 마크 러팔로는 이전에 에릭 바나와 에드워드 노튼이 줄줄이 맡은 헐크인크레더블 헐크와는 상관도 없이 오로지 어벤져스에 의해 헐크 역에 발탁되며 빛을 본 배우다.

 

멀티캐스팅이라기보다는 멀티히어로 영화의 원조 격인 젠틀맨 리그는 명사수 알란을 비롯해 뱀파이어 미나, 스파이 톰, 불사신 도리안, 투명인간 로드니, 캡틴 네모, 야수 지킬(하이드) 등 전설의 영웅 혹은 괴물들이 뭉쳐 세계평화를 지킨다는 스토리다. 그런데 이 7명의 슈퍼히어로 중 그나마 스타는 알란 역의 숀 코너리 정도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73살이었다.

 

결국 멀티캐스팅은 배급사를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인 동시에 포식자 앞에서 몸을 부풀리는 복어 같은, 관객을 향한 과시형 작전일 공산이 크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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