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래퍼' 장용준 군 논란과 장제원 의원, 말과 탈 많은 랩?

유진모 | 기사입력 2017/02/13 [12:15]

'고등래퍼' 장용준 군 논란과 장제원 의원, 말과 탈 많은 랩?

유진모 | 입력 : 2017/02/13 [12:15]
 

 

[K스타저널 유진모 칼럼] 지난 10일 방송된 Mnet ‘고등래퍼는 뛰어난 랩 실력을 지닌 장용준 군으로 인해 성공적인 론칭을 알리는 듯했다. 용준 군이 금세 스타로 발돋움을 조짐을 보였던 것. 게다가 그는 바른정당 대변인 겸 부산시당위원장인 장제원 의원의 아들임이 알려져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1일천하였다. 온라인을 통해 용준 군에 대한 비난의 글이 쇄도하는 가운데 성매매 시도 의혹까지 불거지며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오를 듯했던 그는 일순간에 어긋난 금수저로 비쳤고, 장 의원은 SNS를 통해 대변인과 위원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대표 음악 케이블TV Mnet20126월 기성과 신인 래퍼가 한 팀이 돼 실력을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을 론칭하며 힙합의 유행을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으로 연결해 성공했다. 2년 반 뒤엔 이의 스핀 오프 격인 언프리티 랩스타를 출격시켜 역시 화제 속에 지난해 가을 시즌3’까지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제작진의 시선은 이번엔 고등학생으로 하향조정됐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첫 회의 화제성으로 적중됐음을 입증하는 듯했지만 지난 랩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논란의 도마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가깝게 언프리티 랩스타만 하더라도 경연자들 사이의 심각한 반목과 갈등으로 프로그램 주위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언제라도 감정싸움이 터질 듯 일촉즉발의 기운이 맴돌았던 것. 제작진이 화제유도를 위해 방치했건 유도했건 국내에 팽배한 랩은 폭력적이란 이미지가 항상 수반됐던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아직도 기성세대에겐 랩(힙합)은 저급문화란 편견이 잔존해있다.

 

사실 힙합 신에선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독 다른 장르에 비해 논란과 다툼이 빈번했다. 심지어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선 동서 갈등이 심해 총격살인사건으로 이어질 정도까지 거친 반목이 두드러졌다. 오죽하면 갱스터랩이란 이름까지 생겼을까?

 

과연 힙합 혹은 랩은 그렇게 거칠고 폭력적이며 공격적인 음악일까?

 

우리나라는 35년이 넘는 일제강점기 때 급격하게 근현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것을 많이 수용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그것도 혼란스러웠는데 해방 이후 금세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또다시 비판과 선택의 여유도 없이 서양 특히 미국의 문화와 산업 혹은 그것의 산물을 쓰나미처럼 받아들여야했다. 그 과정에서 서민들의 생활 깊숙이 수용한 게 바로 팝음악이다.

 

K팝이란 이름으로 세계의 대중음악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추세만 볼 땐 지금이 한국 가요가 최고의 절정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산업적 외양일 뿐 음악적 내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전문가들은 다 안다. 오히려 한국전쟁 종전 직후의 1960~70년대가 음악성으로는 풍성한 시기였다. 당시엔 비록 미국을 흉내 냈을망정 록의 모든 하위장르가 다 통용됐고 소울 재즈 심지어 제3세계의 음악까지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다양성의 최대화가 추구됐었기 때문이다.

 

힙합은 그 시기(197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서 태동한 한 문화사조의 총칭이다. 주로 극빈층의 흑인을 중심으로 그들 못지않게 어렵던 일부 히스패닉이 가세해 탄생시킨 이 문화는 랩 디제잉 그래피티 브레이크댄스의 4가지의 총체를 일컫는다.

 

월스트리트에 근무하는 백인부자들은 너른 집안에 음악감상실을 갖추고 수천만 원짜리 고급 진공관오디오를 통해 LP로 재즈나 클래식을 감상했지만, 비좁은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빈민가의 흑인들은 싸구려 카세트테이프를 끼운 휴대용 포터블을 들고 거리로 나와 엉덩이를 흔드는(힙합) 춤을 추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형의 것을 물려받았거나 구제품을 얻었거나 클 때까지 죽 입어야 했기에 헐렁거리는 큰 옷을 입고 다녔고, 타고난 음악적 감각으로 디제잉으로 기존 음악을 섞거나 새로운 콘텐츠를 가미하는 가운데 특유의 리듬감으로 읊조리는 랩을 구사하며 유연한 관절을 이용한 브레이크댄스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타고난 예술성을 감추지 못해 에어스프레이 페인트로 벽에 낙서를 뛰어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게 세계 음악은 물론 문화의 사조를 바꾼 힙합이 된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랩 역시 창조력이 중요하다. 당시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빈부의 지나친 격차에 대한 불만과 가진 자에 대한 반항심밖에 없었다. 그들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걸치는 백인 부자들과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었다. 다만 부자들의 부와 안전을 보호 하려는 백인경찰들과 수시로 충돌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가사는 경찰에 대한 혐오감이 넘실댄다.

 

가난하고 핍박받았던 그들이 평화적이기보다 공격적인 것은 당연했다. 랩배틀은 그야말로 우리네 오래된 욕처럼 그래, 네 변 굵다식으로 매우 서민적이거나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키 크고 힘 센 게 자랑이거나, 집에 B. B. 킹의 오리지널 음반 한 장 있는 게 대단한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랩이 커다란 돈이 됐다. 블루스를 그랬듯이 백인들이 힙합문화와 랩에 흠씬 취해 세계에 유행시킴으로써 오리지널 힙하퍼인 흑인들의 제도권 진출과 성공이 잦아졌고, 아이러니하게도 빈민가의 흑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져갔으며, 이로 인해 성공한 흑인들끼리 편 가르기를 하거나 서로 흠집 내고 다투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우리나라 래퍼나 팬 중에 이런 역사를 꿰뚫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블루스가 유럽인의 신대륙 개척과 정착 과정에서 행사한 노예제도란 천인공노할 폭거로 인해 탄생했고, 록이 그런 블루스를 훔친 백인들이 만든 음악이기에 오늘날 대중음악의 가장 굵은 뿌리이자 줄기가 됐음을 모르기에 K팝이 순수한 우리 것인 줄 착각하는 청소년이 다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랩의 초기 선구자 격인 지누션의 ‘A-YO’ 가사다. ‘(전략)아무도 누구도 날 몰라줄 때/ 왕따가 구타당할 때/ 빽 있어 유죄가 무죄가 될 때/ 배고플 때 밥이 없을 때/ 누가 새 팀벌랜드 부츠 밟을 때/(중략) 아파도 명원에 못 갈 때/ 은메달 따고도 너 울 때(후략)’

 

소외감에 이은 왕따 문제, 유전무죄 무전유죄 메시지, 밥도 못먹고 병원에도 못가는 극빈, 1등만 알아주는 사회적 문제 등을 한탄하고 비판하는 이런 게 바로 랩이고 힙합의 정신이다. 팀벌랜드 옐로우부츠는 힙합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마치 예루살렘과 같은 미국 브랜드로 서민들에게 10~20만 원의 한 켤레 가격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걸 신었더라도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야 할 것이고 그 인파 속에서 그걸 밟히고 마음 아파하는 서민적 정서가 바로 힙합이다. 션은 기부천사로도 불린다.

 

록이 저항정신이라면 랩은 반항정신이다. 록이 대중음악의 틀을 완성하고 지평을 넓혔다면 랩은 우드스탁페스티벌의 혁명정신을 서민생활 속의 반항으로 계승했다. 랩 가사의 라임은 뛰어난 언어구사능력이자 재치와 위트의 정수다. 여기에 자존감을 최대한 뽐내려는 스웨그 역시 아무도 누구도 날 몰라줄 때(집어 쳐/ 이 음악에 미쳐)’라는 힙합정신을 그대로 잇는다.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진 초기 한 농민이 트랙터로 검찰청사에 돌진한 행동은 이해는 되지만 법적인 무죄판결은 불가하다는 게 다수 국민의 정서다. 일부 래퍼들이 경찰을 때려죽이자고 외치는 것은 끊이지 않는 백인경찰의 무저항 흑인 사살행위로 인해 나름대로 근거를 갖지만 결코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님을 다수의 래퍼와 마니아들은 안다.

 

이번 용준 군 논란에 대해서 제작진은 힙합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물론 청소년(미성년자)을 이용한 시청률 따먹기의 윤리적 제작방향에 대한 심각한 고뇌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일반인 출연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인공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논란이 심심찮게 일어 제작진을 곤경에 빠뜨리곤 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은 이미 충분히 검증받은 이가 대다수이기에 그런 리스크의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얼굴과 표피적인 예능만 드러났을 뿐 열 길 물 속보다 깊은 한 길 속을 알 수 없는 비 연예인은 좀 다르다. 오죽하면 거대 연예기획사가 연습생 제1조건으로 인성을 따지고 트레이닝 제1과로 인성교육을 앞세울까?

 

이번 용준 군 논란에 대해 그들 부자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진출하는 게 얼마나 위험요소가 많고, 정치 못지않게 힘든 것인지 절실하게 깨닫는 좋은 교훈의 과속방지턱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작진의 문화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올바른 문화콘텐츠 생산에 대한 도덕성의 재점검이다. 힙합은 거칠어야만 하고, 랩은 공격적이어야만 한다는 국지적 편견과 지엽적 판단은 의외로 큰 낭패를 야기할 수 있다. DJ DOC는 악동이미지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았지만 지나치게 굳어지는 바람에 결국 폭력적 이미지라는 고질병 바이러스의 부메랑을 맞기도 했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음악 많이 본 기사